자글 2024/소금빵 2024

[ 비겁한 글은 쓰지 말아야지 ] 2024. 5. 12. 소금빵 #3

자글_JAGEUL 2024. 5. 14. 13:51

 

글쓰기 #2

 


담백하고 일상적인 단어들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을 좋아한다. 평범하면서도 손에 만져질 듯 선명한 심상을 담고 있는 글이나 신선한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글이라면 더 좋다.

반면 수수께끼 하듯이 의미풀이를 하며 읽어나가야 하는 글은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이런 글들에서 주로 발견되는 모습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문장의 대부분이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어의 꼬리에 멋대로 ‘~적’, ‘~화’ ‘~성’ 같은 것을 붙여서 추상화시키거나, ‘난도질’, ‘중심에 ~가 있다’, ‘점철되다’ 같은 은유적인 단어들이 그렇다. 필자만이 알고 있는 맥락 속에서 사용되던 추상적 단어를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글에 끌어오거나, 좀 더 정확하게 섬세한 표현으로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임무를 은유적인 표현으로 퉁쳐버리면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을 종합해서 문장을 쓰면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오만으로 점철된 지성적 구조화의 작용성은 파편화되어 있고, 그 아래 피아의 연대성을 난도질하는 작금의 중심에는 우리의 외면이 있다.” 글쓴이도 문장을 이해하고 쓴 것은 맞는지 의심되는 이런 문장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관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연결관계를 뭉뚱그리는 효과적이고 유서 깊은 테크닉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ㄴ바’ 어법이다. 다음 문장을 같이 보자.
 “하이데거의 존재자 개념은 기존의 존재론적 논의로부터 순전히 단절된 것인바, 그러한 개념규정의 철학사적 의의는 후설 철학에서 드러나는 존재론적 논의와의 관계 속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위 문장처럼 앞뒤 문장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저 빌어먹을 ‘ㄴ바’가 ‘~이므로’, ‘~이니’, ‘~이지만’, ‘~임에도 불구하고’ 중에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도무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이처럼, 글의 전후 맥락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ㄴ바’로 연결된 문장들 사이의 관계를 알 수가 없다. 앞뒤 문장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겨우 “앞 문장 ‘A’와 뒷 문장 ‘B’는 서로 대립되는 내용이니 이것은 역접이겠거니” 하는 식으로 유추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ㄴ바’ 테크닉은 법률문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판결문에 많이 쓰인다. 읽기에 따라 ‘ㄴ바’는 ‘~이므로’, ‘~이니’, ‘~이지만’, ‘~임에도 불구하고’ 등등 해석 가능한 여러 가지 의미들 중 어떤 것으로도 읽힐 수 있기에, 아마도 지적과 비판의 소지를 가능한 한 줄이고 싶은 판사들의 소망이 ‘ㄴ바’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다 굳이 피곤하게 ‘ㄴ바’를 대신해줄 단어를 고르는 수고도 덜어준다. 많은 법조인들이 이러한 글쓰기를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고 바꾸려고 노력을 하지만 이제껏 관성적으로 써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은가보다.

이런 문장들을 읽어가다보면 마치 암호해독을 하듯이 의미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회의감이 들 때가 많고, 독해에 불필요한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 중도에 지쳐 포기할 때도 많다. 설령 꾹 참고 문장 하나와 씨름한 끝에 그 문장을 겨우 읽어내더라도 내가 그 문장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건 덤이다.



이런 문장들을 싫어하는 만큼, 글쓰기에 임할 때에도 이런 수수께끼나 퍼즐미로 같은 글은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담백한 표현으로, 친절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의 과정 속에서 매번 느끼는 건, 대충 어려운 표현들로 문장을 떡칠하고 문장과 문장의 사이는 모호한 논리전개로 뭉뚱그려 버리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 그리고 담백한 표현들로 섬세하고 친절한 글을 쓰는 것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들, 문장이 어렵고 난해할수록 필자도 그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쓴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한다. 실제로 애매한 표현이 많고 논리전개가 두루뭉술한 글을 읽으면 ‘필자도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애매한 표현과 두루뭉술한 논리전개를 활용하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도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글을 독자가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하기에 독자의 비판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는 우월한 전략일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글들을 싫어하는 것은 내가 단순히 ‘비선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다소 규범적으로, 그러한 글쓰기 방식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글에서부터 글쓴이의 무책임하고 비겁한 태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글쓰기에 임하겠다고 한다면 자신이 다루려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자신이 쓰는 문장의 의미를 스스로도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성찰, 독자에게 가능한 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표현과 문장을 가다듬기 위한 고민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읽을 비망록이나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면, 모호한 표현과 불분명한 연결관계 뒤에 숨어서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글이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종종, ‘내가 쓰려는 글은 재미없는 글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다음 글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