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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경쟁자는 고양이 ] 2024. 6. 8. 소금빵 #6

자글_JAGEUL 2024. 6. 10. 10:05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 인스타에서 돋보기 버튼을 누르면, 동그란 눈, 삐쭉한 귀, 가끔은 예측불가능하고 웃긴 행동들을 일삼는 귀여운 고양이들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채운다. 일상과 인간관계에 지친 나에게 잠깐의 디지털 고양이 구경은 너무나 소중한 힐링의 시간이다. 비록 그 따숩고 복슬한 털을 직접 만져볼 수는 없지만, 햇살을 받으며 세상 평화롭게 누워서 빈둥대는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나의 마음도 평온해진다. 

 

언제든지 귀여운 고양이들을 볼 수 있는 건 인터넷의 중요한 순기능이다. 만약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따금씩 만나는 시크한 길고양이들이나, 낯선 인간의 만짐을 거부하는 친구네 반려 고양이 정도가 내가 만날 수 있는 고양이들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압도적인 물량의 아주 귀여운 고양이들이 랜선을 통해 나에게까지 전달된다. 참으로 멋진 세상이다. 

 

그런데 이것은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재앙일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의 제한된 시간을 두고서 경쟁해야 하는 피튀기는 콘텐츠 시장으로 막대한 양의 고양이들이 쏟아져들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귀여운 고양이들을 염탐하는 데에는 비용이 크게 들지도 않는다. 인스타든 유튜브든 알고리즘만 제대로 흐름을 탄다면, 거의 0의 비용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고양이들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콘텐츠 제작자라고 상상해보자. 따숩고 복슬복슬한 고양이들이 나의 경쟁자라니. 시작부터 경쟁 의지가 꺾인다. 이렇게 귀여운 존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존재보다 더 재밌고 행복한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경쟁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작되었다. 소비자의 시간을 타겟으로 하는 모든 서비스, 그리고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은 고양이와의 경쟁관계에 놓인다. 넷플릭스의 경쟁자도 고양이이고, 이탈리아 관광청의 경쟁자도 고양이이며, 방탈출카페의 경쟁자도 고양이이다. 또한 귀여운 고양이는 백종원의 경쟁자이자, 뉴진스의 경쟁자이며, 임영웅의 경쟁자다. 

 

나와 고양이 사이의 경쟁도 이미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자글에서 작성하는 글도 고양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일정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을 때, 독자로 하여금 그 시간을 귀여운 고양이들을 염탐하는 데 쓰는 대신 나의 글을 읽게 할 수 있을 만큼 나의 글이 매력적일까?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국제 자유무역의 순기능이자 무서운 점은, 재화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생산될 수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각 지역에서 원래부터 그 재화 (또는 그 재화와 대체관계에 있는 재화)를 생산하던 생산자는 경쟁력을 잃고 사멸하게 된다. 그리고 콘텐츠의 자유무역 시대에는 인터넷을 통하여 귀여운 고양이들이 유통된다. 그렇게 고양이들과 대체관계에 있는 경쟁 콘텐츠를 제작하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공짜에 가까운 비용으로 공급되는 고양이들과 맞서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목숨을 건 무시무시한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점이 하나 있다. 경쟁의 범위를 '고양이 콘텐츠'가 아니라 '고양이' 자체로 넓힌다면, 더 이상 이 문제는 비단 콘텐츠 제작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게 된다. 가령 연애와 결혼을 떠올려 보자. 연애와 결혼에서도 우리는 고양이와 경쟁해야 한다. 고양이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순간 "이런 인간이랑 살 바에는 그냥 고양이랑 살고 말지"에서 "이런 인간"을 맡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 반려하는 존재로서의 고양이는 '콘텐츠로서의 고양이'와 다르다.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비용이 들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진다. 그러나 이것은 '콘텐츠로서의 고양이'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교하자면, 고양이보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데에 더 많은 비용이 들고, 고양이보다 인간을 챙기는 것이 더 번거롭다. 즉, 인간에게는 여전히 쉬운 싸움이 아니다. 나와 사는 것이 적어도 적어도 상대방에게 고양이와 단 둘이 사는 것보다 즐겁고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심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