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 2024/호박 2024

[ 사랑에 대한 단상-2 ] 2024. 7. 6. 호박

자글_JAGEUL 2024. 8. 11. 18:55


  데이먼스 이어(Demons year)는 이름의 말장난만큼 흥미로운 가사를 쓴다. 누가 가사를 쓰는지 모르지만 꽤 공을 들이는 것 같다. 

  2020년에 싱글로 발매된 앨범 <Rainbow>에 수록된 앨범명과 같은 이름의 곡을 최근 자주 듣는다. Rainbow는 2021년에 발매된 정규 앨범 <HEADACHE.>에도 수록되었는데, 이때는 도입부에 다른 반주가 깔린다. 2020년 버전으로 들어야 시작할 때 배경에 나오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용한 곳에서 노래를 듣지 않으면 피아노 소리를 노래의 시작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새벽이나 밤늦게, 혼자 방 안에서 들으라는 모양이다.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화자는 ‘내가 바랐던 건 그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화자는 ‘그대’를 싫어하는 걸까?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을 만나기 전까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어디에 사는, 어떤 이름과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바랄 수 없고 대신 어떤 사람일지 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한다. 그렇게 ‘하늘을 같이 볼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어떤 대상이 선명한 실체가 되어 삶으로 들어온다.

  문제는 사랑의 순간이 평생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지금 나는 그 사람과 비 온 뒤 무지개가 뜨는 장면을 함께 볼 수 있다. 무지개는 금방 사라지고, 무지개가 지면 우리는 저물어가는 노을이 된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참 허망하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없’고, ‘영원이라는 건 있지 않’다.

  하지만 화자는 굴하지 않고 얘기한다. ‘그게 뭐 어때서요’라고. 생각해보면 사랑이 번개처럼 우리의 삶을 관통해 이내 사라진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당연한 사실이다. 내 마음대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마음대로 만들 수 없고, 그 순간을 붙잡아 둘 수도 없다. 아무리 준비해도 그런 순간들은 대비가 되지 않는다. ‘어둠이 깔리고 밤에 비가 내리면’, 나는 그 순간성 앞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영원은 화자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었으면 좋겠지만) 있지 않은 것이다. 

  무지개를 사랑이 끝난 후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지(화자와 ‘그대’는 비가 오는 중에 함께 있기 때문에) 사랑의 과정으로 보는지(화자는 ‘그대’와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고자 했기 때문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후자로 보면 그중 하나의 해석은 이렇다. 무지개는 파장에 따라 빛을 굴절시켜 일곱 가지의 색을 보여준다. 평범해 보이는 하늘이지만 그 안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하늘을 쳐다보지만, 그 안에서 내가 보고 있는 다양한 색을 발견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대가 없으면 사실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화자는 무지개가 금방 사라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므로 두려워하지 않고, 숨지 않는다. 이건 곧 ‘사랑이 아니’게 될 예정이라고 이미 각오하고 있다. 

  그런 사랑이 내포하는 균열과 순간성, 떠오르는 것은 ‘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김수영,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