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 2024/소금빵 2024

[ 멋있는 글을 쓰고 싶어 ] 2024. 4. 21. 소금빵 #2

자글_JAGEUL 2024. 4. 22. 09:16

글쓰기 #1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A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 다음으로 말하려던 B가 뭐였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고, 당장 A 얘기를 하는 데 집중하다가 다음으로 말하려던 B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해서 딱히 기억력이 더 나빠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내 머릿속에서도 미처 정리나 구조화가 되지 않은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탓일 수도 있고, 그냥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탓일 수도 있다. (남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에는 보통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특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투두둑 쏟아져나올 때 그것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잡아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을 잊어버려서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 통한스러운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싸우고 집에 돌아와서야 ‘아씨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부들부들 떠는 상황이 그렇다. 또, 아끼는 후배를 만나서 멋들어진 인생조언을 해주었는데 헤어지고 나서야 ‘아 이게 진짜 중요한데 이 애기를 못했네’ 하고 아쉬워하는 상황이 그렇다. 이럴 때면 하려던 말을 빼먹지 않고 와다다 쏟아낼 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다. 그 방법은 ‘내가 말할 것이 몇 개인지’를 기억해두는 것이다. 말하려던 얘기의 가짓수만큼 마음속에 손가락을 펼쳐놓는다. 가령 ‘당장 입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지원서를 몇 군데 써보는 것이 좋은 이유 세 가지’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면 마음속 왼손의 검지, 중지, 약지를 펴놓는다. 그러고는 그중 한 가지 이유에 대한 얘기를 끝내면 펼쳐놓았던 손가락 하나를 구부리는 식이다. 또 어떤 이야기를 끝마쳤다 생각했는데 아직 펴진 손가락이 남아 있으면 ‘아 얘기하려던 게 더 있었지’ 하고 상기시킬 수도 있다. 무슨 셜록홈즈에 나오는 기억의 궁전 같기도 하고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만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이 ‘손가락 세기’ 방법은 글쓰기에도 통한다. 글감이 떠오른 순간부터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에 놓일 때까지는 시차가 있는데,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내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손가락 세기’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멋없는 글이 결과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락마다 ‘첫번째’, ‘두번째’ 하면서 넘버링을 해주는 글을 보면서 멋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어떤 것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1, 2, 3’ 숫자를 붙여주는 것만큼 간단하고 멋없는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그런 쉽고 진부한 방법이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것이 하고픈 말을 조리있게 순서에 맞게 전달하고, 중요한 내용을 빼먹지 않고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 대한 방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쓰인 글을 보면 필자가 너무나 쉽고 비겁한 방법을 택했다는 생각에 심술이 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짓을!’ 같은 진지한 비판은 전혀 아니고, 그보다는 뭔가 ‘하작가’스럽다는 감상에 가깝다.) 아마도 너무 쉬운 방법으로 결과물을 내놓는 데 대한 심술이지 싶다. 
특히 법률서면들이 이런 식으로 작성된다. 글의 단락마다 “1.”, “다)” 같은 기호와 함께 소제목이 붙고, 그 단락 안에서도 ‘첫째’, ‘둘째’ 하며 이유를 나열한다. 행여나 글을 쓰는 자신이나 글을 읽는 법관이 요건사실을 빼먹지는 않을까 간결하고 담백하게 요건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다투어나가는 형태를 띠게 된다. 애초에 멋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니기에 이런 형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의뢰인의 운명이 달린 글을 쓰는데 글의 멋이니 맛이니 신경쓰며 글을 쓸 수는 없다.

매일같이 이런 나무막대기 같은 글, 벽돌로 쌓아올린 것 같은 글들만 읽고 쓰다가, 어느샌가부터 가끔 화려한 표현과 매끄러운 연결들로 이루어진 유연한 문장들을 접하게 되면, ‘나도 저런 유려한 글, 단락이 넘어가는데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게 읽게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동경이 생기곤 한다. 그러나 이런 글, 건축물로 비유하자면 유선형으로 아찔하게 빚어올린 통유리 빌딩 같은 글을 쓰고 싶지만, 대학생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벽돌집 같은 글을 빠르게 지어내는 방법만을 줄곧 배워왔던 것 같다.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글쓰기는 기능과 쓸모에 초점을 둔 나무막대기 같은 글, 벽돌집 같은 글이다. 법률가의 직업영역에 임하면서 창조적인 글쓰기나 재치있는 글쓰기 따위를 의도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전문가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행동일 수 있다. 그렇기에 틀에서 벗어난 글을 향한 나의 선망이 커져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감각적인 글, 내 개성이 담기고 창조적인 면을 드러낼 수 있는 글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첫번째’, ‘두번째’, ... 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디오니소스적 일탈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멋있는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멋있는 글”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멋있는’은 재밌는, 읽는 맛이 있는, 재치 있는, 창의적인, 감각적인, 감동적인 등등 여러 긍정적인 성질들을 때려모아놓은 단어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바로 명쾌한 답을 내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먼저 어떤 글이 멋있는 글인지, 어떤 글이 멋없는 글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손가락 세기’ 같은 장치 없이도 나의 생각을 글로 잘 잡아둘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보면 좋겠다. 그래도 당장에나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다. 잘 읽어야 잘 쓸 수 있기에, 아무래도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게 우선이다. 게으름뱅이에게는 다소 못마땅한 결론이기는 하지만, 벽돌집 같은 글만 읽고 써온 업보를 청산하는 데에는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