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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글 2024/호박 2024

[ 변화의 방식 ] 2024. 6. 30. 호박


(1)
 체벌을 통해 반사회적 행동이 교정된다고 해 보자. 수용자가 배우는 것은 그 행동의 의미가 아니다. 아픔을 통해서 행동이 변한다면 이는 폭력에 대한 순응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때릴 수 있는 사람’ 앞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배운다. 그렇다면 나를 때릴 수 없는 사람 앞에서 같은 행동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내가 행동을 가려야 하는 강한 사람과, 행동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약한 사람을 구별하는 경험이 점차 학습되어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체벌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면 구태여 왜 교육이라는 말을 쓸까? 그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다. 학교가 사회생활을 배우는 장소라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서 타자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남겨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한다면, 교육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학대는 교육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주장하는 것이 이미 폭력에 익숙해진 다양한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른다. 타의적인 훈련으로 외관을 교정하는 것은 쉽다. 오히려 그로부터 빼앗긴 자율성을 학습할 기회가 성장의 관점에서 치명적이다.

(2)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2024. 4. 26.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서울시교육감이 폐지에 반대하며 재의를 요구해 본회의에 재상정되었다가 2024. 6. 25. 가결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공익 침해와 법령 위반을 이유로 대법원에 제소하고 폐지 조례 의결에 대해 집행정지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누군가는 학생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교사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고 한다. 또 시대가 지났으니 이제는 학생만의 인권이 아닌 교사를 포함하여 사람의 인권을 논해야 한다고도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겠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3) 
   교육이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자립성이 훼손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항상 그랬듯 top-down 방식으로 변화하고 나서 처음의 의도와 다른 효과를 낸다고 비난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해야 현장에서 실질적인 교육과정이 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아래에서 위로 변화가 이루어졌으면 했다. 학생들의 인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먼저 이해하도록 도와야 하지 않는지, 그래야만 전인적 성장을 도모한다고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