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34) 썸네일형 리스트형 [ 곱슬이 ] 2024. 10. 19. 소금빵 #11 혜성 곱슬이가 덩그러니 직사광선 아래 놓여 있다. 곱슬이가 대체 뭘까. 곱슬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직사광선에 약한 녀석인 건 알겠다. 직사광선에 약한 녀석이라니. 인간의 피부랑 비슷한 걸까. 언젠가 햇빛이 피부에 엄청 안 좋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햇빛에 있는 자외선인가 적외선인가 하는 것이 피부 노화를 촉진시키고 피부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얘기였다. 아마 적외선은 아니고 자외선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적외선인지 자외선인지 하는 게 세포 안의 뭘 파괴시킨다더라. 뭘 파괴시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햇빛은 지구 모든 생물에게 에너지를 준다는데,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은 세포에 있는 뭔가를 파괴시키고 세포들을 병들게 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기 보이는 곱슬이는 아마 포천에서.. [ 글 탐방-2 ] 2024. 9. 29. 호박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엔 몸이 무겁고 찌뿌둥한 느낌이 든다. 잠을 충분히 자고 밥도 잘 챙겨 먹어도 그런 걸 보면 체력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 이 많은 일을 해낸 후에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가는 길이 짧을수록 발걸음은 경쾌해지는 법이니까. 앞으로 올바르게 나아가려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그 길을 계속해서 의심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의심마저도 올바른 의심인지를 다시 의심한다. 아직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시절일 때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마음에 목적지와 방향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어깨 위에 막연히 있다고 생각하던 무게를 실제로 느끼는 날이 있다. 물 먹은 솜처럼 정말 몸이 무거워지는 날,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문을 .. [ 파리 미술관 투어 ] 2024. 9. 15. 구름 미술관과 박물관을 향유한 팍히 여행기를 소개한다. 7박8일로 다녀온 여행으로, 첫날은 여행지에서 노트북 켜고 일하다가 저녁시간에 꾸물거리며 나갔다. 이 먼 유럽 대륙에서 나 혼자 심지어 비까지 오는데, 밥을 먹으러 나갔다. 호텔 밖 가장 가까운 카페에서 연어 스테이크와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비가 좀 들이치는 테라스에서 그 곳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관광객이 엄청 많고, 웨이터는 걱정한 것보다 친절했고, 연어는 맛없었는데 에스프레소는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평소와 정말 다른 풍경에서 나 혼자 있으니, 새 도화지 한 장을 받은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혼자서도 씩씩하고 흥미로웠고, 하루 전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음미하다 보니, 심지어는 몇 년 전의 나를.. [ 국어사전과 언어규범 ] 2024. 9. 7. 소금빵 #10 글을 쓰다보면 생각외로 사전을 뒤져보게 되는 일이 잦다. 특히 무심코 문장에 집어넣은 단어가 내가 의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사전을 찾아보는 일이 많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에게 이해하는 삶을 '종용'하는 건 아닐까?"와 비슷한 문장을 썼던 적이 있다. 처음 '종용'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 문장의 동사 부분에 들어갈 단어로 선뜻 '종용'이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동사 부분의 빈칸에다 들어가면 딱 어울릴 만한 어떤 '의미의 덩어리'가 내 머리속에 떠올랐을 것이고, 평소 나는 '종용'이라는 단어에다가 그 의미 덩어리를 연결 또는 부착시켜놓았던 것 같다. (인공지능의 자연어 처리로 비유하자면,.. [ 짧은 생각 모음 1 ] 2024. 9. 1. 소금빵 #9 선입견과 현실인식 미국에서는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대신 미국사람들은 오밤중에 UFO를 목격거나 외계인들에게 납치당해 인체실험을 당한다. 미국사람들이 실제로 UFO를 보거나 외계인에게 납치되는 건 아니다. 일부 미국인들이 외계인 인체실험을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양인들이 가위에 눌리는 것과 동일한 정신적 현상이라고 한다. 마치 동양인들이 가위에 눌리면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귀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가령 어두컴컴한 옷장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귀신이라든가, 엄마가 미처 다 안 닫고 나간 방문틈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귀신 같은 거 말이다), 가위에 눌린 미국사람은 상상해본 적 없는 귀신 대신 UFO와 외계인을 만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에 대한 믿음은 그 사.. [ 상시 절전모드 인간 ] 2024. 8. 25. 구름 어느 순간부터, 짐작해보자면 중학생 때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잠을 잘 못 잔 시절부터 나의 체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이래로 시간이 많아서 운동을 열심히 했던 대학교 저학년 시절 말고는 쭉 체력이 좋지 않다. 원래도 근육이 잘 안 붙는 체질이라, 가만히 놔두면 근육은 사라져버린다. 나는 하루종일 에너지를 발산하며 생활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 최고성능모드 인간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상시 절전모드를 켜고 있다. 소란스러울 만한 일에는 한 발 빼고 지켜보는 편이고, 여름에도 추위에 떨다가 감기 걸리지 않도록 옷을 두껍게 껴입고 있으며, 말소리도 조용조용하게 낸다. 항상 최단루트를 계산하고, 걸을 수 있다면 뛰지 않으며, 취미생활은 핸드폰으로 한다. 나는 가용 에너지 자.. [ 요즘 고민 ] 2024. 8. 24. 호박 [1] 중학생 때 내가 직관적으로 외우지 못했던 개념 중 하나는 마찰력이 접촉면적에 상관없이 항상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의 과학상식은 물체가 바닥과 닿은 부분이 넓든 좁든 단위면적당 수직항력이 동일하다고 한다. 현실 세계에서 마찰력이 없는 물체는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어느 정도의 마찰력이 느껴진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마찰력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마찰력이 큰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큰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접촉 시간을 늘려가며 그 사람과 마찰력이 줄어드는 지점을 기다려 본다. 그리고는 이 정도로 꾸준히 나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라면 차라리 짧은 접촉면이 나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서른 살을 앞두고까지 이런 고민을 할.. [ 글 탐방-1 ] 2024. 8. 18. 호박 정현종 시인의 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거기에 얹어서 ‘섬과 사람들이 있는 세계’와 ‘섬에 가고 싶어 하는 나’의 상호작용을 현실의 나의 감각으로도 관찰해 본다. 그래야만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와 의 거리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섬’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때 그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혹은 넘어야 하는 장벽이다.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섬이 있다면 이 사회는 ‘섬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타인과 피상적으로 소통하는 우리는 마치 부표처럼 어느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바다 위를 표류한다. 섬에 가기 매우 어렵거나 혹은 불가능하다면 동시에 왜 섬으로 가고 싶은 상태에 놓이는가? 우리는 섬이라는 공간에 도달할 수 ..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