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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각 차이와 훈련에 관하여 ] 2024. 4. 14. 구름

2. 감각 차이와 훈련에 관하여

 

가.   화가의 눈

 

 스티브 잡스, 존 래시터와 함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든 에드 캣멀(Ed Catmull)이라는 사람이 있다. 에드는 고등학생 시절 애니메이터를 꿈꿨는데, 미술을 잘하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터가 될 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공대로 진학하여 애니메이터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두 가지[미술, 공학]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는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술이란 그림을 잘 그리는 법, 그리고 탁월한 자신만의 표현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하는 일은 끊임없이 ‘보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뿐이다.”


화가의 눈은 특별하다.

 

 

 위 그림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사냥꾼 모습을 한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의 초상’으로 1635년作이다. 실제 개의 털은 셀 수 없이 많은데도, 벨라스케스의 붓터치는 유한하며 심지어 단 한 번의 붓질로 개의 등에 좀 더 빽빽하게 나 있음으로써 어두운 빛을 띠는 털까지도 표현했다. 조화를 이루는 색감과 굵기 표현을 통해서 보편적인 인간 시각에서 실제 개의 모습으로 ‘pass’되는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다. 화가의 눈은 개와 그 주변 환경이 어떻게 상대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빛을 내고, 형태를 차지하고 있는지 포착하는 데에서 일반인과 달라진다.
다음으로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Bathers at La Grenouillère)’를 본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화가는 선을 찍찍 긋는다. 적어도 수십 개의 판자로 이루어졌을 나무배는 단 몇 가지에 불과한 스펙트럼의 갈색칠로 그 형상을 갖추었다. 더 놀라운 건 나무조각배를 그리는 데에 하늘색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나무조각배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늘색이 없을 테다. 그러고 보면, 물은 심지어 밝은 하늘색, 노란색, 청록색이 골고루 쓰이고 불연속적이기까지 하다. 지나가는 여자들은 붓터치의 횟수를 셀 수도 있을 것 같이 간단하게 그려졌다. (인상주의 화풍에 대해서는 따로 논하지 않기로 한다.)


 훌륭한 화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화가는 어떻게 하면 간단한 붓터치가 사람들에게 복잡한 무언가로 보일지를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주어진 세상을 볼 텐데, 그걸 화폭에 담아 내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한 ‘어떤 것을 보기 위한 눈’이 있어야만 그 이미지가 자기 머릿속에 담기며, 그것을 세상에 현출시킬 수도 있는 법이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고 멋을 느끼는 것은 예술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신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   요리사의 미각

 

 훌륭한 요리사의 미각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소금은 요리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흔히 요리 전문가들은 요리에 반드시 필요한 3요소를 ‘불, 소금, 지방’이라고 한다. 소금은 맛에 층(layer)을 깔아주고 깊이를 더해준다. 아무리 복잡한 요리를 하려고 해도, 소금이 없다면 복잡한 맛은 나오지 않는다. 불(火)과 지방이 충분히 있어도 아쉬운 요리가 된다.

 

 천재 요리사들에게는 소금의 양이 눈에 보이는 것일까? 소금간 맞추기는 타고나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요리사는 자기가 만드는 모든 요리에 소금을 조금, 조금 더, 조금 더, 과하게 넣어보면서 그 경험을 혀로 체득해야 한다. 적당한 간의 기준선을 왕래하는 경험의 반복을 통해 형성된 ‘훈련된 혀’가 나중에 요리사의 손을 도와서 딱 적정한 양의 소금을 집게 만들어준다. (사실 소금의 종류에 따라서 넣어야 하는 정량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다.   감각을 깨워서 살아보자!

 

 현대인들은 감각을 정밀하게 활용할 일이 거의 없다. 나 같이 둔한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인간은 미각, 촉각, 청각, 후각, 시각이 골고루 잘 발달한 동물이다. 한 번 사는 세상, 더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감각을 더 틔우고 훈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봄에 피는 꽃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구름이나 바람의 느낌도 좀 구별해보고, 맛있는 음식은 왜 맛있는지, 멋진 그림은 왜 매력이 느껴지는지… 약간씩만 더 오래 생각해본다면 좋을 것 같다.

 세상에서 포착해야 마땅한 것을 포착하고, 맛을 더 깊이 느끼고, 좋은 음악에 더 잘 심취하고, 갈 길을 걷는 발에서 리듬을 느끼고, 봄 냄새를 맡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