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주말을 보내는 방법
학교 다닐 때는 주말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직장에 다니고부터는 평일과 주말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주말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했는데, 결국 평일에 못하는 일을 마음껏 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하지 못하지만 주말에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실 가장 큰 건 아주 긴 낮잠인데, 그 다음으로 큰 건 책을 읽거나 전혀 다른 학문을 배우는 것이다. 평일에 내가 하는 일과는 매우 결이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하게 된다.
주말이 분리되지 않으면 삶이 쳇바퀴 굴러가는 것처럼 똑같이 느껴져서 금방 질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면서 쌓는 경험의 범위가 한정되어서, 자기 분야 밖의 세상의 존재를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게 아닐까 의심도 된다. 무엇보다도 내 삶에서 주말의 개념이 사라질 것이다. 주말은 분리되지 않으면 그 존재의의를 잃어버리고 만다.
가끔은 친구들과 파티를 열어서 삶의 의외성과 특별함을 찾아야 한다. 그런 걸 하기에는 주말이 제격이다. 이런 이벤트가 주말에 예정되어 있다면, 나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평일을 보내면서 기다릴 수 있다.
모든 주말이 그러면 좋겠지만... 나의 이번 주말은 금요일 저녁에 맡겨진 중요하고 급한 일이 50%를 차지했다. 나머지 부분은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하면서 모바일 게임을 하는 데 썼다. 고양이 식탁이라는 모바일 게임에서 멋진 식탁, 냉장고, 창문, 딸기 팬케이크 레시피, 김밥 레시피, 요리사 고용 등등에 지불하기 위해서 하루종일 거의 수 십 편의 광고시청 버튼을 클릭했다. 정작 멋진 주말을 보내는데는 성공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 모녀 관계
내 주변 사람들의 모녀 관계는 대체로 아주 환상적이다. 꽃 선물을 주고받고, 예쁜 사진을 찍고, 둘만의 여행을 다니며... 카톡 프로필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그런 사진이 올라온다. 우리집 모녀 관계는... 한 마디로 동상이몽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그런 친한 친구같은 관계를 원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고 다른 친구네 집처럼 하는 상상만 해도 당황스럽다. 친한 친구였던 적이 있었어야지...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거나 그냥 서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거나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여튼 내 기억 속에서 나는 엄마랑 친한 친구였던 적은 없다. 19년 간 아침에 학교 가라고 잘 깨워주시고, 학원비와 용돈을 꼬박꼬박 주시고, 학원에서 심야에 돌아오는 나를 집까지 셔틀해주는 노력을 해주셨으므로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경제적 및 생활적 지원과 나의 유대감은 다른 문제지 않나. 나는 이른 아침과 밤 10시 넘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모님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엄마의 그 "뭐했냐?", "어땠냐?" 하는 식의 말투도 별로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화나는 일이 있으면 거울에다 대고 그 사람에게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내는 척을 하는 습관이 있다. 종종... 그 대상이 엄마일 때가 꽤 많다. 최근에도, 내가 내 돈으로 내가 발품 팔아서 집 구해서 이사한다는데 나보고 다짜고짜 전화해서 집 계약 취소하라고 윽박지르는 소리를 들었고(이유: 이사 가는 시기에 대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또한 최근에, 다짜고짜 이모들과 엄마 친구들이 나의 취업을 대견하게 생각했으니 밥을 사라고 식당 목록을 보내오기도 했다. 또 최근에, 사랑니 빼라고 해서 내가 발치 비용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더니 결국 끝까지 달라고 달라고 했는데도 결국 카톡 답장도 안하고 돈도 못 받았다. 그런 날엔 거울에 대고 엄마한테 화를 내곤 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맞벌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항상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여겨졌고, 끊기지 않은 직업 경력이 프라이드가 되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절대로 우리집의 모습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훌륭한 집안 아닐까 한다. 다만, 그와 별개로 친한 친구는 처음부터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거라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의 도리로, 이사가는 사실을 밝히고 나면 금세 "내가 틀린 말 한 적 있냐", "내 말 들어!", "내가 엄마 말을 왜 안 듣니?", "내가 이만큼 살아서 아는데, 내가 맞다고!"라고 하면서 훈계하려고 한다. 내가 침대를 사고 나서 무슨 침대를 얼마에 샀는지 알려줬다면(그래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분명히 "그거 별론데", "너 그거 잘못 샀어"라고 했을 게 틀림없다. 그런 사람이니까. 훈수두는 사람. 내가 첫 월급을 타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것은 그들에 대한 '감사'이지 친한 친구의 증표가 아니다. 내 마음은 순전한 은혜 갚음의 표시이지, 갑자기 친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엄마가 갑자기 여름휴가 때 자기와 둘이서 해외 여행을 갈 것이라면서 자기가 여행 계획을 세워주겠다고 한다. 둘이서 여행...? 둘이서 커피 마셔본 적도 없다. 나는 당황스럽다.
엄마는 내게 여성은 친절해야 하는, 꾸며야 하는, 쿠션어를 써야 하는, 화를 참아야 하는, 성질을 죽여야 하는, 현모양처를 꿈꿔야 하는, 남성보다 잘 나가면 안되는, 음식을 잘 해야 하는, 아침식사를 차려야 하는, 섬세해야 하는, 꽃과 명품을 좋아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또한 직장(가정 밖)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개인생활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긍정하는 삶의 태도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엄마는 나로 하여금 다른 집과는 다른 우리집의 모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내가 이렇게 세간의 딸과 다른 생각을 하는 애교 없고 줏대 있는 딸로 크게 만든 것도 엄마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인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효도를 권하고~ 그 효도에는 딸로서 엄마에게 친근한 친구처럼 대할 것이 포함되는 것 같지만~ 저는 그 효도 패키지에서 '친한 친구 역할'은 제발 빼주었으면 하는 것이고요, 남들과 다른 딸이 되어야지, 어쩌겠나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쩔 텐가...? 정말 못하겠는 것을...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은혜도 좀 갚고, 감사도 좀 하고, 부모의 건강한 중년 생활도 좀 응원하는 딸의 모습을 누군가 알고 계십니까? 나에게 좀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생일이나 어버이날 같은 때에 선물과 의례적인 감사인사 카드를 보내고 밥이나 먹는 자식이 될 것만 같다.
(*아빠는 언급하지 않는 이유. 문제가 없기 때문. 절대로 엄마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님.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아주었으면 한다. 아빠는 나에게 친함을 강요하지도 않고, 뭘 할 때마다 훈수 둬서 나를 화나게 하지도 않고, 자기 친구들과 자기 자매들에게 밥 살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부정기적인 용돈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면 응원하면서 용돈도 잘 보내준다. 내가 불편할 이유가 없다.)
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인생을 보내는 방법과 같게 된다. 나는 이 점에 굉장히 집착하여, 어렸을 때(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때)는 그날 그날 일기에 나의 하루에 일어난 일과 내가 타인과 나눈 대화, 아니면 내 귀에 들어온 흥미로운 대화를 모두 빠짐없이 적기도 했었다. 고등학생 때는 삶이 너무 재미없어서 그렇게는 못하고, 대신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서 수능 공부를 하는 건 너무나 가치 없다고 생각해서 민음사 고전소설을 읽고 줄거리를 요약하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나의 고등학생 때 일기는 줄거리 요약으로 가득했다.
상대성 이론을 배운 적이 없어서 아직도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나 뭐라나. 시간 여행도 할 수 있다나 뭐라나... 이 시간집착녀는 언젠가 꼭 그 이론에 대해 자세히 배워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에게는 어쨋든 시간은 흐르고, 시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쓰도록 놓여져 있다. 지금 나는 20대 후반이 되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렀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오늘 이 글을 쓰는 나는 '젊음을 이용하여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고 일을 잘 해내면서,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운동과 프로틴 섭취로 튼튼한 몸을 단련할 것'을 기조로 시간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풀어놓는 작업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을 쓴다면, 지금 시간에 내가 살아야 하는 내용으로 올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오늘의 나'는 며칠 전 나눈 친구와의 대화, 요 몇 달간 일어난 일, 환경의 변화 등의 소소한 영향을 받아서 생긴 나고, 이런 영향이 없는 '모월 모일의 나'는 월급을 소수자, 환경, 빈곤퇴치, 교육에 털어넣고 봉사활동과 사회운동을 촉구하는 글을 쓰는 게 옳다고 믿을 수도 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대학생 땐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오늘은 안되겠다. 내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자글 2024 > 구름 20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뭔지 모르겠으니 공부하자 ] 2024. 6. 22. 구름 (0) | 2024.08.11 |
---|---|
[ 사람찾기 ] 2024. 6. 16. 구름 (0) | 2024.07.12 |
[ 어느 날의 명상 체험 ] 2024. 5. 26. 구름 (0) | 2024.05.27 |
[ 4. 자기개발 활동의 사치성 ] 2024. 5. 11. 구름 (0) | 2024.05.14 |
[ 1. 나와 사회를 이해하는 일 ] 2024. 3. 30. 구름 (0) | 2024.04.09 |